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니카 소렌스탐 (문단 편집) == 기타 == * 스톡홀름 출생으로, 12세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 유학 중이던 1992년에 세계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인 1993년에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1994년 미국 여자 프로 골프(LPGA) 신인상을 받았으며, 다음 해인 1995년에는 3승을 거둬 상금왕에 올랐다. * 동시대에 활약했던 라이벌 선수들을 [[콩라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력이 있었다. 가장 큰 경쟁자였던 [[캐리 웹]]은 1999, 2000년에 연속으로 상금 1위를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이후 소렌스탐의 최전성기에 가려지면서, 캐리 웹은 '영원한 2인자'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박세리]] 역시 데뷔년도인 1998년과 전성기였던 2001,2002,2003년에 연속해서 상금 2위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저 네번 모두 소렌스탐이 상금 1위였다. * 2013년에 미국 프로골프 협회(PGA of America)에서 주는 [[http://economy.hankooki.com/lpage/sports/201311/e20131115181831118250.htm|2013 골프 퍼스트레이디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미국인이 아닌 유일한 수상자가 되는 셈인데, 그녀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 미국 웹사이트인 About.com에서 선정한 최고의 여성 골퍼 50인에서 당당히 [[http://golf.about.com/od/golferswomen/ss/top_50_women_10.htm|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캐리 웹은 7위, 박세리는 19위, 로레나 오초아는 22위였다. * 2003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콜로니얼 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여자 선수로 58년만에 남자 선수들의 PGA 대회에 도전했던 것. 그러나, 2라운드 합계 5 오버파 145타로 출전 선수 113명 가운데 공동 96위. 1오버파 142타에 끊긴 결선 진출 기준 타수에 4타나 모자라는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경기 끝나고 인터뷰 자리에서 눈물까지 보이면서 아쉬워했다. 그래서 이후론 주로 남자 골퍼랑 이벤트 대결을 여럿 벌였다. 이러다 보니 [[미셸 위]]가 2000년대 중순 남자대 회에 주로 나가는 걸 비난하자 역으로 소렌스탐도 까인 바 있다. 하지만, 소렌스탐이 미셸 위에게 말한 건 '여자 대회 우승부터 하고 나가라'라는 것이었고, 2002년까지 이미 LPGA 메이저 대회 4승 포함 다수의 우승을 쌓아올린 소렌스템 스스로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발언이었다. [각주] [[분류:스웨덴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1970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2008년 은퇴]][[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분류:스톡홀름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